제주도 사투리에도 문법이 있습니다. (물론 제가 잘 안다는 것은 아니구요.)

그리고, 지명에도 규칙적인 단어가 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들렁"에 대해서 소개해 볼까 합니다.


들렁

"들렁귀", "들렁궤", "들렁모루" 등 제주의 많은 고유 지명에 들렁이라는 단어가 붙습니다.

이 "들렁"이란 단어는 속이 비어 있는 바위.. 그러니까 조그만 동굴이나 하늘을 가릴만한 모양의 바위 등이 있는 곳에 주로 이름이 붙습니다. (앞뒤가 터져 있는 굴을 의미한다고도 하네요..)

대표적인 곳인 올래 8코스 중간, 속칭 '조근모살'에 위치한 갯깍 주살절리대에 있습니다. 

이 곳에 바위 중간에 구멍이 뚤려 있는 지형이 있는데, 이 곳을 "들렁귀", "들렁궤", "들렁귀궤" 등으로 불리는 곳입니다.

여기에 뒤에 붙은 "귀" 또는 "궤"라는 단어도 동굴을 의미합니다. ('귀'나 '궤'나 별 차이는 없습니다. 발음을 글자로 옮기면서 나오는 차이, 지역에 따른 발음상의 차이 때문입니다.)

사진설명: 중문 '조근모살'을 지나며 볼 수 있는 '들렁궤' (사진출처:http://www.sanjeong.net/zbxe/1870)


'들렁귀'나 '들렁궤'라는 지명은 다른 곳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화산섬이란 특성 때문에 곳곳에 동굴과 같은 지형이 많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또 다른 대표적인 곳인 제주시 오등동에 위치한 '방선문'입니다. 제주 10경 중 하나인 '영구춘화'가 본래 이 곳이란 사실을 아는 분은 아마 별로 없을 것 같네요.

'방선문'이란 지명은 조선시대 양반들이 한자로 만든 지명이고, 지방의 고유 지명은 '들렁귀'입니다.


사진설명: 제주시 오등동에 위치한 '방선문', 본래 고유 지명은 '들렁귀'다.


사진설명: '방선문'에 가면 조선시대 말기에 양반들이 새겨놓은 마애명을 볼 수 있다. 사진의 중심에 있는 글씨는 조선시대 제주목사였던 홍중징이 쓴 한시다. 양반들이 풍류(?)를 즐기던 곳이다 보니 이름도 '신선의 세계로 가는 문'이란 뜻의 '방선문'이 되었다.


그렇다고 모두 동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서귀포시 서홍동 중산간에는 '들렁모루'라는 곳이 있습니다.

여기서 '모루'라는 단어는 동산이란 의미를 갖고 있는데, 오름은 아니고 작은 언덕 정도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사진설명: '들렁모루' 정상에 있는 바위다. 고인돌처럼 생겼다. 바위 밑이 비어 있는데, '들렁'이란 단어가 꼭 동굴에만 붙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하지만, '궤'라는 단어는 동굴에 붙는다.


사진설명: 앞 사진에서 보았던 '들렁모루' 정상 바위에 올라서면 서귀포와 태평양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밑이 비어있다고 불안해 할 필요는 없다. 넘어가지 않는다. ^^;


'들렁모루'라는 지명을 풀이해 보면, '속이 비어있는 바위가 있는 언덕'쯤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겁니다. 

들렁모루에는책로도 갖춰서 있기 때문에 천천히 둘러보면 좋습니다. 봄에는 고사리도 많이 나고, 조그만 계곡도 끼고 있어서 참 아름다운 곳입니다. 멋진 대나무도 있습니다.

'들렁모루'는 서귀포에서도 아는 분이 많지 않기 때문에(찾기도 어렵고) 지도로 소개합니다. 한 번 찾아가 보시면, 정말 아름다운 곳이 있었네라며 감탄할겁니다.

그러고 보니, 지도에는 '들렁모루동산'이란 말이 잘못 되었군요. '모루'가 '동산'이란 의미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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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서귀포시 서홍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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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일은 제주도뿐만 아니라 한국 현대사에 잊혀질 수 없는 아픔의 날입니다.

1948년 4월 3일부터 1954년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될 때까지 억울하게 희생된 분이 3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을 정도입니다. (4.3진상조사 보고서에는 2만 5천~3만명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이어 올해도 우리나라의 중앙에서는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4.3위원회의 위원장은 총리가 됩니다. 4.3특별법 제정 이후, 총리가 위원장이 되면서 위령제에 총리가 참석하는 것은 의례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파 정부라는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그런 일이 없더군요.

작년에는 한승수 총리가 모터쇼 참석을 이유로 4.3 위령제에 불참하는 일이 있었죠. 올해는 정운찬 총리가 참석한다는 내용을 하루전인 4월 2일 한나라당 제주도당에서 밝혔습니다.

그런데, 4월 3일이 되고 보니 그게 아니였더군요. 뉴스에서는 천안함 수색 도중 안타깝게 돌아가신 고 한주호 준위님의 영결식에 참석을 했더군요. 

그리고 중앙방송에서는 해군장에 처음으로 참석한 정운찬 총리와 과거에 참석하지 않았던 총리를 비교하고 있더군요. 4.3위령제에 2년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대한민국의 총리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이야기 뿐만 아니라, 4.3위령제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보도를 하지 않더군요.

총리 참석이 의례적인 4.3위령제에 참석하지 않고, 이례적으로 참석한 해군장 영결식에 참석했습니다. (물론 고 한주호 준위님을 추모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 또한 애통하게 생각하고 애도하고 있습니다. 단지 아무런 설명 없이 갑자기 그렇게 일정을 바꿔 버렸습니다. 아직도 연좌제의 고통을 벗어나지 못하고 억울함에 사무쳐있는 4.3희생자 유족분들에 대한 일언반구조차 없다는 것이 참 애통할 뿐입니다.)

이는 우익세력의 눈치를 본 결정이 아니였나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방송에서 제주4.3 위령제를 다루는 뉴스를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YTN은 24시간 천안함 사고 특보체제입니다. 다른 뉴스는 아예 다루지를 않더군요. 다른 방송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다못해 독도관련 뉴스도 하루 잠깐 다루고, 다시는 다루지 않더군요. 이런 것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정권에 부담이 되는 사안은 아예 다루지 않거나 짧게 다뤄버리고, 국민들의 시선을 다른 곳에 고정시켜 버리는 이런 언론을 언론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덧붙여, 오늘 4.3관련 기사의 댓글을 보며 너무 화가 났습니다.

아직도 제주4.3희생자들을 빨갱이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었습니다.

물론 좌익세력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제주도만 그랬을까요?

당시 29만이였던 인구 중에 3만명이 죽어야 할 만큼, 10명 중 1명이 죽어야 할만큼, 제주도 사람들이 그렇게 잘살아서 좌익 사상을 무장하고 있었을까요?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며, 억울하게 죽어간 희생자들입니다. 300개의 마을이 불태워지고, 마을 사람들이 학살되었던 그런 사건입니다.


정말 가슴 아픈 일들이 연일 터지고 있네요. 이런 일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현 정부가 너무나 싫습니다. 

김길태 사건 생중계를 하며,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발언을 묻어 버렸고... 안타까운 천안함 사고를 이용해, 일본의 독도 교과서 문제도 묻어 버리고 있군요.

그리고, 고 한주호 준위님 영결식 참석을 핑계로, 예정되었던 4.3위령제 참석도 취소해 버렸죠. 자신의 정치적 입지에 도움이 될 곳으로 장소를 급히 변경한 것이죠.

그래야 뉴스에 하루 종일 나올테니까요. 더구나 이전 총리와 비교하면, 괜찮은 총리 이미지도 만들 수 있었을 테니까요.


아래 사진은 작년 위령제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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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있는 성곽들은 크게 4종류가 있습니다. 이 것들 중 3가지는 육지에서는 보기 힘든 독특한 것인데요... 오늘은 그 중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제주의 성곽들

우선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 등 행정중심지에 있는 성곽과 별방진, 명월진 등 지역방어를 위한 성곽 등은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

잣성

다음은 상잣성, 중잣성, 하잣성입니다. 이 성들의 용도는 다른 성들과 달리 매우 독특합니다. 일반적으로 성이 지역방어를 위해서 쌓아지는데 반해 이 것들은 목장의 경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안에 가까운 곳에 하잣성을 쌓고, 한라산쪽으로 상잣성을 쌓아서 소와 말을 방목했을 때 멀리 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현재는 원형이 많이 훼손되었고, 규모가 큰 것도 아니라 찾기는 좀 어렵습니다. 하지만 제주도 지도에는 명확하게 성곽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환해장성

환해장성은 고려시대 삼별초 항쟁부터 조선말기까지 꾸준히 수축된 해안성으로 그 길이가 120Km에 달했다고 합니다. 이 정도면 절벽이 아닌 해안지역에는 어김없이 환해장성이 쌓아져 있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아쉽게도 해안도로개설 등 개발로 인해 대부분 사라져버렸고, 일부 지역에 조금 남아 있거나 복원되었습니다. 실로 대단한 문화재를 잃어 버린 것 같아서 항상 아쉽습니다. 제주도 해안도로를 달리다가 오래되어 보이는 돌무더기를 보신다면 환해장성의 일부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관련글: http://jejulog.kr/410

제주4.3성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근래에 수축된 성곽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1948년 4.3사건 이후 수축된 성곽입니다. 당시에는 모든 마을마다 성을 쌓고 주민들이 죽창을 들고 보초를 섰다고 합니다. 이 성곽들도 모두 사라졌지만, 그 중 원형이 남아있는 곳이 있습니다. 제주 조천읍 선흘리 낙선동마을에 있는 '낙선동 4.3성'이 그 것으로 현재 복원공사가 마무리 되어 가고 있습니다.

현재 성곽에 대한 공사는 거의 마무리되었고, 전시관을 짓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주차장 등의 시설도 모두 갖추어져 있어서 관람이 가능한 상태입니다.

앞에 있는 표지판의 설명을 옮겨 보겠습니다.

제주4.3사건이 한창이던 1948년 11월부터 중산간 마을들이 토벌군에 의해 초토화되었다. 이 곳 선흘리도 11월 21일 마을이 전소되어 수많은 인명희생과 재산피해를 입었다. 주민들은 1949년 봄 당국의 재건명령에 의해 길이 약 500m의 사각형 모양의 성을 쌓고서야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다. 당시 제주도 전역에 쌓았던 성은 무장대습격 차단이라는 명분과 함께 주민들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다. 성 안에서의 집단생활 또한 힘들었다. 주거지는 허름하고 좁은 가건물(함바집)이 전부였다. 또 낮에는 밭에 나가 일을 하고 밤에는 보초를 서야했다. 특히 젊은 남자들이 대거 희생되어 성을 지키는 일은 부녀자와 노인들의 몫이였다. 이제 이곳 낙선동에 4.3의 폐허를 딛고 재건의 토대를 삼았던 당시 전략촌성의 일부를 복원하여 역사 교육의 장으로 삼고자 한다.

안으로 들어와 보니 예상보다 규모가 큽니다. 앞 선 설명처럼 가로세로 500m규모였다고 하니 성을 쌓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주민들이 고생을 했을 지 생각하게 됩니다.

보초를 서기 위한 초소와 통시(돼지를 키우던 화장실)도 복원을 했습니다. 초소 건물 높이를 보시면 알겠지만, 성의 높이가 4~5m는 족히 되어 보입니다.

여러 개의 통시(화장실)를 나란히 배치한 공동화장실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의 중간 중간에는 사진처럼 구멍이 있어서 바깥을 정찰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청소년 국토순례단으로 보였습니다. 변방의 제주역사를 수도권학생들이 어떻게 받아 드릴지 궁금해지더군요. 중앙의 시각으로 역사와 교육이 엮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 학생들에게 4.3성이 어떤 메시지를 전해 줄 수 있을까요?

앞선 사진들과 달리 실제 원형입니다. 복원현장 가장 끝 부분에 남아 있는데, 사실 개인 감귤밭 안에 있었기 때문에 찾고 싶어도 찾기 힘든 곳이였죠. 찾더라도 사유지이기 때문에 들어가 볼 엄두가 나지 않기도 했구요.

 

크기를 비교할 수 있도록 성 앞에 서봤습니다. 혼자 싸돌아 다니느라 찍어 줄 사람이 없더군요. 물론 찾아오는 사람도 없구요. (방금 전 국토순례단을 제외하고선요) 결국은 대충 의자에 올려놓고 찍었는데 이렇게 나왔네요.

이 낙선동 4.3성이 아니였다면 그 존재조차 잊혀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개인이 소유한 농장에 조금 남아있던 유일한 4.3성이 역사와 평화를 생각하게 해줄 것이라고 누가 알았겠습니까?

항공사진 상에서는 공사흔적이 나타나지 않지만 성의 윤곽은 확실히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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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워크투리멤버 2009.08.06 18:09 신고

    흔히 볼 때는 성곽인 줄도 몰랐는데 멋지네요. 언젠 한번 가봐야겠어요!^^

    • k2man 2009.08.19 22:37 신고

      정말 새롭게 보이더군요.
      숨겨 있던 역사였다가 전면에 드러나는 것 같아서 더욱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

오늘 부분일식이 있었죠. 언론 보도를 보니 제주도에서는 92%까지 일식이 진행되어서 개기일식에 거의 근접하는 수준이였다고 합니다.

서귀포에서 찍었으니 아마도 가장 개기일식에 근접하지 않았나 생각이 됩니다. 앞선 포스팅에서도 소개해 드렸지만, 정말 주변이 깜깜해지고, 기온이 급락하고, 이로 인해서 찬바람이 불어 오더군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앞에서는 사진만 소개해 드렸는데, 이번에는 간단히 초벌로 편집한 동영상을 첨부합니다. (원본도 별로고, 시간도 별로 없어서 단순히 자르기만 했습니다. 다음에 시간을 좀 들여서 제대로 편집해 봐야겠네요.)

HD화질은 아직 인코딩이 끝나지 않아서 내일쯤 공개하겠습니다. ^^

HD를 클릭해서 고화질로 보세요. 유튜브가 느리시다면, 아래 TV팟으로 보시구요. ^^


▲ 가장 선명했을 때, 필터가 문제였네요.

 
▲ 필터가 약해서 흐려져 버렸지만, 일식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입니다.

▲ 이제 천천히 해가 커져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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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전 2009.07.22 19:48 신고

    대전에서 봤는데

    이보단 아니지만

    대단했어요. ㅋㅋ

    언제다시 볼수있을란지 .

    • k2man 2009.07.23 11:38 신고

      2035년 이라던데요.
      그 때까지 통일이 되면 북한가서 개기일식 볼 수 있고, 아니면 여기서 부분일식을 봐야 한다더군요.
      여튼 정말 대단했습니다. ^^

  2. 정일기 2009.07.22 20:13 신고

    전 광주살아서 광주에서 봤는데요, 제주도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거의 80퍼센트 이상 가려진 얇은 초승달 형태의 태양을 보았더랬죠. 진짜 해질 무렵은 아니어도 갑자기 상당히 어두워져 새벽이 다시 온 듯했습니다. 지나가던 분들도 하늘 쳐다보시고 난리도 아니었죠. 기온도 살짝 내려가고. 신기하게도 평소 동이 틀 무렵마다 울집 마당에서 날아와서 시끄럽게 떠드는 참새떼가 일식이 일어나던 그 시각에 다시 나타나서 한동안 울더라는거죠. 갑자기 어두워지니 다시 아침이 온 것으로 착각한거 같아요. ㅎㅎㅎ 언제쯤 다시 볼 수 있으려나...

    • k2man 2009.07.23 11:40 신고

      그러고보니 동영상에도 참새소리가 많이 들어갔거든요.
      여튼 정말 신기한 경험이였습니다. ^^

  3. 비바리 2009.07.22 20:20 신고

    오전내내 날씨가 참 서늘하더군요
    신기해 하다 보니 일식이었다는것을 깜빡했더랬어요
    후다닥 챙겨 촬영하니 촬영법을 몰라 버벅대고
    3층에서 오르락 내리락 ..거리다가 몇십분이 후딱 지났어요.
    끝 무렵에 겨우 몇장 건졌습니다.
    동영상까지 잘 촬영하셨네요.

    • k2man 2009.07.23 11:41 신고

      방문 감사합니다. ^^
      비바리님 사진 정말 멋있게 나왔네요.. 저도 잘 봤습니다. ^^
      (솔직히는 HD캠코더로 찍고, 캡쳐한 겁니다. ㅋ)

  4. Sun'A 2009.07.22 20:24 신고

    부분일식 동영상이 멋지네요.
    구름이 흘러가는 모습이 신비롭고 환상적입니다 ^^

    • k2man 2009.07.23 11:42 신고

      Sun'A님 방문 감사합니다. ^^
      칭찬을 해주시니... 고맙습니다. ㅋ

  5. Bluepango 2009.07.22 22:48 신고

    정말 멋지게 촬영하셨군요.
    개기일식에 가까운 모습을 보니 굉장하단 생각이 듭니다.
    제가 있는 곳에서 30% 정도만 진행 되어서 아쉬웠답니다.
    트랙백 남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k2man 2009.07.23 11:43 신고

      와~ 바누아투에 사시는 건가요?
      정말 멀리에 계시네요. 멋지십니다. ^^
      사진도 정말 멋있구요.

남부로 갈 수록 좀 더 개기일식에 가까워 진다고 하더군요. 아침부터 날씨가 잔뜩 흐려서 일식을 볼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구름 사이로 볼 수 있었습니다.

절정에 달했던 10시 50분쯤에는 비 오는 날처럼 어두워지고 찬바람이 부는 것이 정말 음산한 분위기를 연출하더군요. 아마도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찬바람이 일어났나 봅니다.

'주몽'에 보면 일식이 일어나면서 바람이 몰아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그 장면이 문뜩 생각나더군요. '해가 사라지고 사방이 어두워진다. 그리고는 찬바람이 일어나 휘몰아 친다.'

개기일식이였다면 더욱 비슷했을 것 같습니다만, 사방이 어두워지면서 찬바람이 일어나는 것은 맞더군요. 날씨도 갑자기 가을처럼 서늘해 졌구요. 순간적으로 등꼴이 오싹한 느낌도 들더군요.

중간 사진쯤 보시면 거의 개기일식에 가까웠던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아마 그래서 더욱 그렇지 않았나 생각이 드네요.

선글라스를 필터로 사용하다 보니, 나중에는 구름이 걷히면서 햇빛이 강해져 사진이 선명하지 못하네요. 동영상은 편집 후에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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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줌마띠~! 2009.07.22 13:50 신고

    오잉~..옛사람이 두려운 이유는 없네요~

    근데...참 예쁘네요~

    • k2man 2009.07.22 13:55 신고

      본문에서 너무 간략히 언급했나 보네요. ^^;

      일식이 절정에 달했을 때, 정말 비오는 날처럼 어두워지고 찬바람이 쌩쌩 불더라구요. 아무래도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찬바람이 일어났나 봅니다.

      어찌나 음산하던지... ^^;

  2. Cressiah™ 2009.07.22 13:53 신고

    사진 잘 나왔네요~
    동영상도 기대하겠습니다 ^^;;

    • k2man 2009.07.22 13:57 신고

      감사합니다. ^^
      열심히 편집 중인데 오랫만에 하려니 ㅋㅋ
      방문 감사합니다.

  3. 2009.07.22 14:11

    비밀댓글입니다

    • k2man 2009.07.22 14:36 신고

      방문 감사합니다. ^^
      절정일때는 사진도 사진이지만, 그 느낌이... 기온이 순식간에 내려가더라구요.

  4. TISTORY 2009.07.22 14:39 신고

    안녕하세요, TISTORY입니다.



    티스토리 메인에서 '개기일식'을 주제로 회원님의 글을 소개해드렸습니다.^^
    혹시 노출과 관련하여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tistoryblog@hanmail.net 메일을 통해 말씀해주세요!


    앞으로도 재미있고 유익한 글로 자주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5. 청공비 2009.07.22 17:06 신고

    와~ 선글래스 통해서 녹색으로된 사진을 보니 정말 색다르네요~
    저도 화이트밸런스 조정하면서 찍어봤는데, k2man님처럼 멋진 색감은 안나오더라구요.

    • k2man 2009.07.22 17:47 신고

      녹색 선글래스여서 그랬나 봅니다. ㅋㅋ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되었네요. ^^;
      방문 감사합니다. ^^
      (실토하자면 동영상으로 찍고, 괜찮은 것만 캡쳐한 겁니다. ^^;)

    • 청공비 2009.07.22 17:54 신고

      ^ ^ 캡처실력도 실력이지요.
      잘 찍어야 그 와중에 건지잖아요~

 

소리듣기 (아래 내용과는 다릅니다. 지역에 따라서 바뀌는 것이니까요. 대충 들어보시면 리듬이 단순하기 때문에 따라 리듬을 넣어서 읽어 보시면 재미있습니다.)

처음 부분은 아기에 대해서 칭찬을 하면서 자라고 하고,
빨리 자야 일할 수 있다고 하면서 도박에 빠져있는 남편과 신세 한탄을 하고,
누군가에게 아기 자게 해달라고 협박도 하고,
마지막은 맛있는 거 좋은 거 줄테니 어서 자라고 하는 내용입니다.

제주도 여성들의 힘겨운 삶이 그대로 나타나는 내용이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애기 구덕 흥그는 소리'의 원문 출처와 사진의 출처를 적고 싶은데... 워낙 이곳 저곳에서 발견되어서 정확한 출처를 밝히기가 어렵습니다. 원저작자님께서 혹시나 보신다면, 말씀해 주시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또, 제주어(제주사투리)를 잘 아시면 제가 번역해 놓은 부분 중 잘못된 부분과 보충했으면 하는 내용을 적어 주시면 너무 고맙겠습니다. ^^ (아래아 글자 표현을 못하겠네요. 한글고어 인터넷에서 쓰실 줄 아시는 분도 도움 부탁드립니다. ^^;;)

 

애기구덕 흥그는 소리 (아기구덕 흔드는 소리)

자랑자랑 자랑자랑 자랑자랑

웡이자랑 웡이자랑 자랑자랑 웡이자랑

우리아긴 자는 소리 놈의아긴 우는 소리 로고나
우리아기는 자는 소리 남의 아기는 우는 소리로구나

웡이자랑 웡이자랑 웡이자랑 웡이자랑 웡이자랑

일가방상 화목둥이 어서자랑
가문에선 화목둥이 어서자라

부모에게 소신둥이 어서자랑
부모에게는 소신둥이 어서자라

동숭에게 우애둥이 어서자랑 어서자랑
동생에게 우애둥이 어서자라 어서자라

웡이자랑 웡이자랑 자랑자랑

어서점점 돈밥먹엉 돈잠자라 혼저조녁 허여사 헐거아니냐
어서 점점 맛있는 밥 먹고 단잠자라 빨리 저녁 해야 할 것 아이냐

웡이웡이 웡잉자랑 웡이자랑

해는다 지엄시녜 무사기영 저드람시니
해드다 지고있잖니 왜그리 징징대느냐('저든다'는 '걱정한다'의 의미입니다만 몸이나 마음이 편안하지 않은 상태를 말하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후자로 봐서 의역했습니다.)

웡이자랑 웡이자랑 자랑자랑

-중략)

느네아방 어치냑도 노름밭에간 처에영 먹언오란
너희 아버지 어젯밤도 도박하는데 가서 쳐 먹고 와서

어느때민 놀곡일하곡 가정허영 살아갈거니
어느때면 놀고 일하고 가정만들어서(화목하게) 살아갈건가

웡이자랑 자랑자랑 자랑자랑 자랑자랑

우리아기 재워도라 놈이아긴 자는 소리 웡이자랑
우리아기 재워주라 남의 아기 자는 소리

아니재와주당 질긴질긴 총배로 걸려다근
안 재워 주다가는 질긴 총배로 걸어다가

지픈지픈 천지소에 다리첬닥 내쳤단 허키여
깊은 깊은 천지소에 빠뜨렸다 내놨다 하겠다

앞밭으래 혼가달 뒷밭으래 혼가달 대껴불민
앞 밭으로 한 다리 뒷 밭으로 한 다리 던져버리면

앞집강생이도 박박틑나 뒷집강생이도 박박틑나
앞집 강아지도 박박 뜯고 뒷집 강아지도 박박 뜯는다

자랑자랑 자랑자랑 자랑자랑 자랑자랑

웡이자랑 웡이자랑

혼저커사 나아기 부모에 효자허컨 요아기야
얼른 커야 나중에 부모에 효자되려면 이 아기야

-중략)

설룬아기 잠시라 어멍이랑 물에랑 들엉 전복고동 잡앙오랑 너젖주마
착한아기 자고 있어라 엄마는 바다에 들어가 전복고동 잡아와서 너 젖주마 ('설룬아기'를 어떻게 옮겨야 좋을지 모르겠네요.)

웡이자랑 자랑자랑 우리아기 어서 자라

수덕좋은 우리아기

어서자고 잘먹이건

컴만커러 머리석도 너만주마

저녁방에 기름통도 너만주마

어리꼬배 지구꼬멍 요애기랑 키워줍서

웡이자랑 웡이자랑

설룬아기 어서자랑

할마님 이서도 호다울멍 할마님 조둘럽지 마랑
할머니있어도 울면서 할머니 괴롭히지 마라 ('호다'의미는?)

웡이자랑 웡이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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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바리 2009.07.22 20:16 신고

    매일아침
    애기구덕 흔들랭 허멍 깨우민 발로
    끄닥끄닥 허당 발라당 뒤집엉
    욕도 먹곡 해수다..
    저 구덕도 이젠 모두 쇠구덕입디다만...

    • k2man 2009.07.23 11:47 신고

      그런 추억이 있으시군요.
      동생을 키우던 누나셨나 봐요...
      말씀을 듣고 보니 제 누님이 저를 그렇게 키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2. 워크투리멤버 2009.07.31 01:07 신고

    아직 젊은 제주 도민이라서 그런지 모르는 말이 참 많네요. 점점 제주어가 사라지는 것 같아서 너무 안타깝습니다.ㅠㅠ

    • k2man 2009.08.04 08:16 신고

      솔직히 저도 어립니다. ㅋㅋ
      실제 어르신들이 쓰시는 어휘를 알기는 쉽지 않죠.
      제주어 문법을 간단히 공부해 봤었는데 (혼자 자료 찾아서) 정말 재밌습니다.
      그냥 쓰는 줄 알았던 사투리가 다르게 보입니다. ㅋㅋ

제주도를 관광하면서 서귀포층이라는 패류화석층을 바로 스쳐지나갔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 분들은 많이 없을 겁니다. 천지연폭포 근처 잠수함, 유람선 선착장 바로 옆에 서귀포층이라는 지층이 존재합니다.

10여년전 무너져내리고 잘못된 보존으로 바로 옆에 있으면서도 알아차리기 힘든 천연기념물 195호인 서귀포층을 소개해 보고자합니다.

 

서귀포층은 이런 곳

경도  126 : 33 : 37
위도  33 : 14 : 9

위치는 바로 이전글에서 소개해 드린 서귀포방파제와 같은 곳입니다. 바로 그 옆에 있으니까요.

서귀포층은 1968년 천연기념물 195호로 지정된 곳입니다. 서귀포층이란 명칭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에 일본인에 의해서 명명되었습니다. 이 곳에는 많은 조개화석들을 볼 수 있어서 “서귀포 패류 화석층”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대부분 조개화석이지만 고래나 물고기 화석, 산호화석, 상어 이빨 등 다양한 화석이 함께 발견되기도 하는 곳입니다.

 

 

20여년전 서귀포층은

지금은 너무나 많이 무너져내려 지층이 많이 훼손되었습니다. 과거 20여년전에는 하얀색 바위는 보기 힘들었습니다. 온통 누런색의 지층이 이 곳을 메우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이 곳에는 작은 지층 파편도 수없이 많이 있었고, 조개화석도 사방에 널려 있었습니다.

부끄럽지만 그 당시 저는 이 곳에서 주먹만한 작은 지층과 조개화석 등을 집으로 가져왔던 기억이 납니다. 저뿐만 아니라 함께갔던 친구들도 왜 그랬는지 열심히 모아왔던 기억이 납니다. 그만큼 지층과 화석이 즐비했던 곳입니다.

그 당시 사진을 찾아보려고 해도 찾지를 못하겠습니다. 제 사진들 뿐만 아니라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도 그 아름답던 20여년전 사진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붕괴된 서귀포층

10여년전 이 곳 절벽이 붕괴되었고,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포크레인으로 바위를 쌓아 올린 모습이 보입니다. 전혀 자연스럽지도 않고, 무너졌다고 그저 쌓아놓은 모습이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이 지층벽 윗쪽으로는 과거 프린스호텔이 지어졌습니다. 지금은 SGI가 인수해 연수원으로 쓰고 있지만, 그 건물 공사로 인해서 이 곳이 이렇게 훼손되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높이가 약 50m에 이르는 해안 절벽 위에 호텔을 지었으니, 호텔의 경관은 이루 말할 수 없었겠지만, 그 밑에 깔려 있는 약한 사암층은 그대로 무너져 내려버렸습니다.

 

아무나 들어가 바위를 주워갈 수 있는 곳

아직도 이 곳은 아무런 제지없이 출입할 수 있는 곳입니다. 단지 입구에 낙석으로 인해 위험할 수 있으니 출입하지 말라는 팻말만 있을 뿐입니다.

너무나 귀중하고 아름다운 자연유산을 잃어버린지 10여년이 지나고 있습니다. 아니 그 이전부터 천천히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저와 같이 아무 생각 없이 작은 돌을 집으로 가져 왔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함께 훼손해 왔고 지금도 그러고 있습니다.

작은 바위, 작은 나무 하나도 모두 소중한 자연유산이라고 생각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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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오석학교(www.osuk.co.kr)는 1967년 재건학교로 시작하여 오랜 시간 동안 서귀포의 청소년과 저학력 성인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비정규 야간학교입니다.

낮에는 아무도 없는 허름한 집으로 보이지만, 저녁 7시가 다가 오면 불이 켜지고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활기찬 곳으로 변모합니다.

100여명의 학생들과 30여명의 자원교사들이 함께 만들어 가고 있는 서귀포오석학교를 소개합니다.

 
▲ 서귀포오석학교 전경

비정규 야간학교이다 보니 일반학교와는 여러모로 다른 점이 많습니다.

졸업식은 8월말 한 밤중에 열리고, 학생도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지금은 청소년들의 진학을 포기해야 하는 사례가 과거보다 많지 않아 청소년들은 많지 않습니다.

대신 어려웠던 시기에 공부를 할 수 없었던 우리의 어머니들이 이 자리를 빛내고 계십니다.

 
▲ 8월말에 졸업식이 있다. 한 밤중 열리는 졸업식.

오석학교에는 초등학교과정 3개반(한글반, 새날반, 여울반), 중학교과정 1개반(늘푸른반),  고등학교과정 1개반(해냄반)이 있고, 한글만 집중적으로 하는 특별반인 한글교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문해율이 2% 미만으로 알려져 있지만, 주변을 조금만 둘러봐도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들은 배움의 한을 안고 살아가시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일반학교와 모든 것이 다른 것은 아닙니다. 잘 정돈된 교실이 있고, 칠판에 분필로 글씨를 쓰며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도 있습니다. 학교 축제라 할만한 상록제도 열리고, 소풍도 갑니다.

예전 첫 수업 때 어머니들이 차렷, 경례를 하시는 모습을 보고 얼굴이 붉어지고 어쩔줄 몰라 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이 마저도 부러우셨다는 이야기도요...

 
▲ 1월에 있는 상록제, 가족들을 모시고 반별로 준비한 공연을 한다.

성인학습자의 경우에는 자신을 드러내기를 힘들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곳에 수업을 받으러 오시는 분들은 어쩌면 자신감이 많으신 분들이시겠죠. 또 낮에는 생업을 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밤 10시까지 공부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런데도 100명이 넘는 학생들이 항상 있는 것을 보면 얼마나 많은 분들이 배우지 못한 아픔을 갖고 계실지 생각해 보게 합니다.

 
▲ 가끔은 이렇게 흥겹게 즐기는 시간도 있다.

이 곳의 모든 일들은 자원교사들의 힘으로 꾸려집니다. 수업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일들을 자원교사들의 힘을 합쳐서 해내가야 합니다. 그렇기에 더욱 값진 의미를 갖는지도 모르겠습니다.

40년 이상을 한 자리에서 배움을 나누는 실천을 하고 있는 서귀포오석학교 선생님들과 학생 여러분들이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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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는 오래 전부터 자생하는 귤나무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먹고 있는 온주감귤은 본래 제주에 없었던 품종입니다.

온주감귤이란 말은 중국의 온주지방에서 나는 감귤이였기 때문에 붙여진 것입니다. 미국 등의 오렌지와 달리 손으로 까먹을 수 있고 수분이 많은 품종으로 현재 판매되는 제주감귤 대부분이 온주감귤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고려시대에도 탐라에서 공물로 귤을 바쳤다거나 조선시대의 각종 기록에도 제주에 감귤이 재배되었다는 기록은 많이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남아 있는 재래종 감귤은 10여 종에 불과하고, 우리가 먹는 감귤은 제주의 재래종 감귤이 아닙니다.

최초로 도입된 온주감귤나무

오늘 소개할 감귤 나무는 우리가 가장 많이 먹고 있는 온주감귤 중 최초로 도입된 감귤나무입니다. 수령이 100년이나 된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온주감귤나무 입니다. (재래종 감귤나무 중에서는 370여년 가량된 나무(제주시 애월읍 상가리)가 있으며, 100년이 넘은 것이 185주, 300년 이상도 31주나 있습니다.)

1911년에 천주교 서홍성당(현재는 면형의 집)에 계시던 엄다께신부가 일본에 있는 친구에서 제주에 자생하는 왕벚나무 몇 그루를 보내주었고, 그 답례로 미장온주 14그루를 받아 시험재배하였다고 합니다.

당시 받아서 재배했던 미장온주 14그루 중 1그루가 지금도 남아있으며, 현재도 감귤이 열리고 있습니다.

 
▲ 높이는 대략 3~4m정도 되어 보입니다. 아름다운 정원과 함께 어우러져 있습니다.


▲ 지금도 열매가 열리고 있습니다. 겨울에는 감귤을 수확하기도 합니다.

 

서홍 8경 중 하나

우리나라 최초로 도입된 온주감귤나무라는 특성 때문에 서홍 8경 중 하나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 나무가 있는 이 곳 면형의 집(옛 서홍성당)에는 또 하나의 서홍 8경이 있습니다.

제주도 나무이기도 한 녹나무입니다. 수령이 200년 가량되어 높이가 16m, 둘레가 3.9m에 이르는 아주 큰 녹나무입니다.


▲ 녹나무는 제주도 나무로 이 곳에 있는 녹나무는 보호수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위치

경도  126 : 33 : 42
위도  33 : 15 : 44

현재 서귀포 주공아파트 5단지(동홍)의 바로 서쪽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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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서귀포에 있는 가장 얇은 건물입니다. 아마 제주도에서도 가장 얇지 않을까 예상이 되네요.

서귀포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중앙로터리(1호 광장)에 있습니다.

항공사진으로 측정해 보니 두께는 2m가 약간 넘는 것 같네요. ^^

1층에는 악기를 판매하는 가게가 있고, 2층은 현재 비어있습니다.

로드뷰로 보시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하세요.

http://local.daum.net/map/index.jsp?cx=397531&cy=57831&level=0&panoid=1297593&pan=250.54208835684676&tilt=7.235979487673015&map_type=TYPE_SKYVIEW&map_hybrid=true&map_attribute=ROADVIEW&screenMode=norm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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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미예 2009.06.28 14:36 신고

    잘보고 갑니다. 신기해요. 재밌습니다.

    • k2man 2009.06.29 17:58 신고

      별거 아닌 글에 이렇게 댓글까지..
      방문 감사합니다. ^^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신병을 빠르게 훈련시켜야 했지만, 한반도 본토에서는 마땅히 그럴만한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주도에 육군훈련소를 만들어 신병을 양성하게 되는데, 그 터의 일부는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거쳐가게되는 논산 육군훈련소(전 제2훈련소)의 전신인 대정 육군훈련소를 소개합니다.

 

위치

경도 : 126:15:43
위도 : 33:13:31

행정구역은 제주도 대정읍에 해당하며 송악산, 마라도 등의 관광지가 밀집한 곳입니다.

이 지역은 군사적요충지로 일제시대에는 최대의 비행장이 있었던 곳입니다. 현재까지도 당시 활주로 일부와 전투기용 벙커들이 남아 있습니다.

현재 민간인이 확인할 수 있는 육군훈련소 유물은 대도로변에 있는 훈련소 정문입니다. 이 외에도 막사 등의 일부 건물이 남아있지만, 현재 이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해병대 부대내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민간인이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

육군 제1훈련소?

이 부분에 대한 명확한 해답은 모르겠습니다. 아시는 분이 있다면 확실하게 알려 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아버지에게 들은 바로는 당시 대정 지역에 제2훈련소가 있었고, 중문 인근 예래지역에 제1훈련소가 있었다고 합니다. 1953년 휴전이 되면서 대정지역에 있던 제2훈련소는 논산으로 이전을 하게 되고, 예래지역의 제1훈련소는 문을 닫았다고 합니다.

저희 과수원(예래동) 입구에는 전적비가 남아 있습니다. 아버지 말씀으로는 이 곳에서 군산쪽으로 포를 쏘며 포병훈련을 했다고 합니다. 훈련소가 예래에도 있었던 것은 분명한가 봅니다.

다른 분의 글을 보면 대정지역에 있던 훈련소가 제1훈련소이고, 논산훈련소가 제2훈련소로 문을 열었다고 합니다.

대정에 있던 제2훈련소가 논산으로 옮겨간 것인지? 아니면 대정에 있던 훈련소는 제1훈련소이고 논산에 새롭게 제2훈련소가 세워진 것인지? 궁금합니다.

 

대규모 군사유적지

다른 글에서 이미 소개했지만 간략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 지역에는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군에 의해 만들어진 군사유적지들이 즐비합니다. 아직도 공군이 소유하고 있는 알뜨르비행장부터 전투기용 벙커, 대공포진지 등이 있죠. 해군쪽으로는 해안에 뚫어 놓은 자폭용 잠수정의 엄폐를 위한 동굴까지 있습니다. (드라마 대장금의 가장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동굴이 바로 이 동굴입니다.)

여기다 6.25당시 예비검속으로 인해 집단학살된 학살터(일본군의 탄약고 터)와 이 분들을 모신 '백조일손지묘'도 있습니다.

이 지역의 오름들에는 일본군의 최후 방어작전을 위한 땅굴이 곳곳에 뚫려 있습니다. 평화박물관이 위치한 가마오름이 대표적인 곳입니다.

대한민국 곳곳 아니그러한 곳이 없지만, 참 가슴 아픔 역사가 이 지역에는 모두 모여있는 듯합니다.

혹시나 이 길을 지나게 된다면 멀리 제주도까지 내려와 훈련을 하고 전장으로 투입되었어야 했던 아버지, 할아버지들에 대한 생각을 해봤으면 합니다.




로드뷰로 보기 =>

http://local.daum.net/map/index.jsp?cx=327424&cy=51350&level=3&panoid=2188510&pan=190.47388392478604&tilt=-1.6443654876754894&map_type=TYPE_SKYVIEW&map_hybrid=true&map_attribute=ROADVIEW&screenMode=norm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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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상사 2009.06.25 20:04 신고

    정문 앞에 强兵대 교회(지금은 어떻게?)! 장도영 준장이 설립(?)

    • k2man 2009.06.25 20:33 신고

      강병대교회는 현재 제주도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늘 이 곳 사진도 찍을 걸 그랬네요. 아래 링크로 들어가보시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local.daum.net/map/index.jsp?cx=326932&cy=50794&level=3&panoid=2188539&pan=293.660944224992&tilt=-2.312816248661451&map_type=TYPE_SKYVIEW&map_hybrid=true&map_attribute=ROADVIEW&screenMode=normal

  2. 비바리 2009.06.26 09:49 신고

    알뜨르 비행장을 보고 글을 적고 나서 들어와봅니다.
    내용 정리하다 보니 훈련소 이야기들도 들은바 있어서
    관심있게 잘 보고 갑니다.

    • k2man 2009.06.26 11:08 신고

      비바리님 안녕하세요. ^^
      저도 비바리님께서 쓰신 알뜨르비행장 소개 잘 읽었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

6월 1일~2일 열렸던 한·아세안 특별 정상회의에 맞춰서 조성된 꽃밭입니다.

중문에 있는 제주컨벤션센터와 주상절리대(지삿개)의 중간쯤에 있습니다.

지난 주 일요일 찾아 갔는데, 장마가 시작되서 비는 그쳤지만 안개가 자욱하더군요. 어쩌면 더 운치가 있었을 수도 있겠네요.

아무래도 6월에 맞춰서 조성한 곳이다보니 슬슬 꽃이 사라지기 시작할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조금씩 꽃이 지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요.

어찌보면 조금 아쉽습니다.

제가 알기론 이틀간의 정상회의를 위해서 꽃길 조성 등 조경에 들어간 예산만 16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돈을 들였지만 시간이 흐르면 모두 사라지는 것인데요.

크기는 작은 꽃밭이더라도 오랫동안 지키고 관리해서 아름다운 정원으로 가꾸었으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같은 예산이라면 크지만 한 순간이면 사라지는 넓은 꽃밭말고, 작지만 오래도록 아름다운 꽃밭을 가꾸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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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있는 산방산을 아실겁니다.

하나의 거대한 암석으로 이루어진 산으로 해발 365m입니다.

이 곳은 몇 년 전 산불이 난 이후로 천연기념물인 암벽식물지대를 보호하기 위해서 등산로의 출입을 막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의아해 하시겠지만, 이 산에도 등산로가 있습니다.

언뜻보기에는 등산이 불가능해 보이지만, 산 후면부로 등산을 할 수 있는 하나의 코스가 있습니다. 정말 가파라서 힘들기는 하지만 산방산에 올랐을 때, 바다를 바라보면 막혔던 가슴이 뻥 뚤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사진] 제주 서남부에 위치한 웅장한 자태의 산방산

 

오늘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등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바위낙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수년 전 등산을 했을 때 찍은 사진인데… 갑자기 떠올라 블로그에 올려 봅니다.

 

산방산을 등산했던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거기다 낙서라고 표현하기 민망할 정도로 정성(?)들여 바위에 글씨를 새겨 넣었네요.

이 곳에서 볼 수 있는 사진은 이 정도가 아닙니다. 다음 사진을 보시죠.

 

한글은 물론 한자로까지 새겨 넣은 글씨가 대단합니다.

왼쪽에 보이는 ‘경’이라는 글씨는 깊이가 1cm는 족히 되어 보입니다.

이 정도로 글씨를 새기려면 분명 ‘정’과 ‘망치’를 챙겨 왔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냥 갔다가 매직으로 적는 수준의 낙서가 아니라 글씨를 이름을 새겨넣고 와야겠다는 마음가짐을 하고 올라왔을 겁니다.

 

이런 글씨들은 언제 새겨 넣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런 낙서는 누군가 한 번 시작하게 되면 주변으로 따라서 하게 되겠죠.

사진에 소개해 드린 글씨는 이 정도 뿐만 아니라 무지 많습니다. 큰 바위 곳곳에… 사람 키가 닿지 않을 것 같은 곳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이제는 이런 행동이 많이 없어졌겠지만, 다시 한 번 자연을 이렇게 훼손시키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포스팅을 해봅니다.

[사진] 방선문계곡의 마애명 – 영조때 제주목사였던 홍중징의 글씨

 

사진의 글씨는 산방산이 아니라 제주시 방선문계곡 바위에 새겨져 있는 홍중징의 한시 ‘등영구’입니다. 이 시절에 이런 행동도 저는 옳은 것이 아니였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자기 이름 석자를 낙서처럼 새겨 놓은 것도 많습니다. (어떤 분은 리플달기를 해놓은 것 같다고 표현하시더군요,)

혹자는 몇 백년이 흐르면 바위에 새겨진 ‘마애명’처럼 보존할 가치가 있는 문화재가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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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호등 2009.06.09 17:59 신고

    저런거 볼 때 마다 저게 대체 뭐 하는 짓인가 싶더라구요...
    자기 집 대문에 낙서하는것과 같은 의미라는걸 모르나...

    • k2man 2009.06.09 18:13 신고

      다행히 최근에는 이런 행동들이 많이 줄어 들어서 다행입니다.
      하지만 여미지식물원의 용설란 등 여기 저기 낙서로 얼룩져 있죠.
      분명 달라져야 합니다.
      관심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

  2. 정성욱 2009.06.09 19:03 신고

    자연에 낙서하는게 뻘짓인걸 알고도 저러니 문제 ㅎ 가끔 다른나라찍으러 갔을때 우리나라 사람 이름적혀있으면 손발이 오글오글 쪽팔려죽을꺼같아요 ㅋ

    • k2man 2009.06.09 19:41 신고

      해외에 나가보질 못해서..
      아직도 저런 분이 계시다면 가장 먼저 고쳐야할 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의견 감사합니다.

제주의 봄 풍경 중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백호기 축구대회입니다. 축구도 축구지만 이 대회의 최대 볼거리는 화려한 응원전입니다. 지난 3월 28일 현장 동영상을 글 말미에 올렸습니다.

백호기축구대회?

백호기는 1974년부터 제주일보에서 주최하는 제주지역 청소년 축구대회입니다. 지금은 많이 시들해 졌지만, 제가 고등학교 재학하던 시절에는 결승전 관중이 3만명에 이르기도  했었죠. 준결승전이 벌어졌던 3월 28일에는 준결승전이였음에도 1만명 가까운 관중이 축구경기를 보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준결승전임에도 1만에 가까운 인파가 축구경기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프로축구의 굴욕

2년전인가 대회에서 재미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제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인 고등학교 축구 백호기 결승전이 끝나고 이 경기장에서 제주와 대구의 프로축구 경기를 진행하기로 했던 것이죠.

관중 동원에 목말랐던 제주로써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프로축구 관계자들이 울고 갈 일이 생겨 버렸죠. 백호기 결승전이 끝나자 많은 관중들이 경기장을 떠나 버린 겁니다. 평균관중도 비교가 안될 정도죠. 제주UTD.의 관중수에 비한다면 2~3배는 될 정도의 관중이 모여 들기 때문입니다.

 

왜 제주는 고교 축구에 열광하는가?

학교 대항전이란 측면 때문에 인기가 높기도 하겠지만, 빼놓을 수 없는 이유는 역시나 화려한 응원전입니다. 3월 28일 준결승이 벌어졌던 날, 제주종합경기장을 찾아 열띤 응원을 확인해 봤습니다.

아쉽게도 모교인 서귀포고는 응원전을 펼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날 승리에 이어 다음 날 결승전에서 승리해 우승을 하는 쾌거를 올렸습니다. ^.^ 제가 고등학교 재학시절에 이 대회 우승을 한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서귀포시내에서 카퍼레이드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도 엄청나게 열광했던 기억이… ^^;;;

 

 

화려한 응원전보러 제주도로?

아래 일부 동영상을 올렸습니다만, 실제 현장에서 보는 것과는 비교가 안됩니다. 3월말이나 4월초 주말에 경기가 열리므로 이 때 제주를 찾을 계획이 있다면 여행계획에 꼭 포함시켜 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제주종합경기장을 찾아 가시면 되고, 이 주변 벚꽃도 이 시기 아름답게 피기 때문에 좋은 추억이 되실 겁니다.

 

[준결승 2경기, 중앙고등학교 VS 대기고등학교]

 

 

[오현고등학교]

 

 

[제주중앙고등학교]

 

 

[대기고등학교]

 

 

[응원전의 시작을 알리는 카운트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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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서울에 다녀왔습니다.
제주공항에 내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잠시 무등이왓터에 촬영하러 들렸죠.

정말 보리가 익어가는 계절인가 봅니다.
비가 조금씩 내리던 날씨는 어디가고 화창한 날씨와 바람이 시원했습니다.

이런 들녘을 언제 걸어 봤을까요?
좁은 농로를 따라 걸으며 상쾌한 바람을 맞는 기분이란~~ 참 좋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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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까시 2009.05.18 18:31 신고

    정말 산책하고 싶은 풍경이네요~^^

    • k2man 2009.05.18 19:35 신고

      정말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런데, 이 곳이 참 가슴아픈 역사가 있는 곳입니다.

제주도는 4면이 모두 바다인 이유로 바다를 이용한 적들의 침입이 많았던 곳입니다. 이 때문에 해안을 따라 군사유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자그마한 연대 등은 보존하고 복원하고 있지만, 그 웅장했던 환해장성은 개발의 논리로 보존 대상에서 밀려나 버린 듯 합니다.

 

환해장성은?

제주도의 해안선은 200Km 가까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환해장성은 제주도 해안선 중 절벽지역을 제외한 약 120Km에 달하는 해안선을 따라 고려시대부터 조선말기까지 수축된 웅장한 해안 장성입니다.

고려시대에 진도에서 항전중인 삼별초의 제주도 진입을 막기 위해서 쌓기 시작한 것이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꾸준히 쌓아진 것으로 보입니다. 가장 최근에는 영국 선박이 우도에 정박하여 측량을 하자 제주도는 침입에 대비하게 되는데, 이 때 도민을 총동원해서 환해장성을 수축했다고 합니다.

 

위치

제주도 해안도로 곳곳에서 보이는 오래된 돌무더기는 환해장성의 일부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 중에서 온평리, 신산리 등지에 가장 잘 남아 있지만, 이조차도 원형은 대부분 훼손되었고 일부 복원된 구간만이 있을 뿐입니다.

현재 총 5Km 정도의 구간만이 제주도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을 뿐 다른 지역의 환해장성은 훼손되든 말든 방치된 상태입니다. 거기다 제주도기념물로 지정된 지역의 실태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이제 120Km에 달하던 환해장성은 완전히 사라져버리고 돌무너기만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오늘 다녀온 곳은 서귀포 예래동에 있는 무너져 방치되고 있는 환해장성의 일부입니다.

경도  126 : 23 : 40
위도  33 : 14 : 8

 

 

예래동 환해장성

그나마 보존이 되어 있는 부분은 약 200m정도 입니다. 하지만 이 부분도 많이 훼손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어디에도 환해장성임을 알리고 주의를 요청하는 안내판 하나 찾아 볼 수 없습니다.

해안도로를 내면서 걸리적거리는 환해장성을 골재로 사용해 버렸고, 이 돌을 가져다 밭에 돌담을 쌓았습니다.

어렵던 시기에 있었던 일들은 뭐라 할 수 없겠지만, 지금도 환해장성을 밀어버리고 해안 주차장을 만드는 등의 일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무너져내린 환해장성

완전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성으로서 구실을 하기 위해서 높이가 3m에 이르는 구간도 있지만 이런 곳은 높이가 1m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환해장성은 제주도만의 특이한 성 수축 방법이 적용되어 있다고 합니다.

제주도를 여행하다 보면 불규칙한 모양의 돌로 저렇게 높게 잘 쌓아 놓았을 까 하는 생각을 해보셨을 겁니다. 그런 돌로 쌓은 성이지만 제주도만의 방법으로 튼튼하기 그지 없었다고 합니다.

 

 

조금 더 가면 완전히 무너져 수풀이 우거져버린 곳도 있습니다. 이 곳에 성이 있었는지 조차 알 수 없을 만큼 훼손되어 버린 모습이 할말을 잃게 만듭니다.

 

옛 것을 버리고 새 것을 지어야 관광자원이 되는가?

제주도에서는 지금도 곳곳에 공원을 만들고 해안도로를 비롯한 대규모 개발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엄청난 돈이 들어가죠.

무엇이 제주도의 관광자원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있는 것을 버리고 새 것을 만드는 것이 관광자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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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지난 이야기입니다만 문득 떠오르네요.
한라산 정상에서의 일출을 기억해 보고자 합니다.


새벽 3시에 성판악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도시의 불빛이 모두 사라지고 새까만 어둠만이 있어서 별들이 정말 많더군요. 하늘을 보며 연신 사진을 찍어 봤지만, 사진 기술의 부족으로 가장 밝은 별 하나밖에 찍히지 않았습니다.

아무런 준비없이 무작정 차를 몰아 와서 그런지 있는 것이 없더군요. 하다못해 가장 중요한 랜턴도 챙기지 않았으니... 어쩌겠습니다. 휴대폰 배터리가 충분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최소한의 불빛으로 오르기로 작정했습니다.

눈이 쌓여있어 길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감과 들개에 대한 공포, 조릿대가 바람에 날리며 내는 소리까지... 온 정신을 집중해서 겨우 정상에 다다를 수 있었습니다.


정상이 다가올 무렵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해가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그 장관의 일출은 아니지만 뭐랄까요... 짜릿한 느낌...

언제였더라.. 정확히는 20살 때 그런 일출을 본적이 있습니다.
친구들과 성산일출봉에 갔다가 다음 날 아침 저는 첫 버스를 타고 밭으로 일을 하러 갔었죠. 그 버스에서 그 장관을 볼 수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성산일출봉 정상에서 찍은 그 사진을 보니 너무 아쉽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버스에서라도 봤으니 괜찮았죠. 3대가 공을 들여야 한다는 그 장관을 볼 수 있었으니까요.


3월이였는데... 그 때도 이렇게 눈이 많이 쌓여 있습니다. 등산로의 난간을 보면 1m이상 눈이 쌓여 있다는 것도 알게 되죠. 그 난간이 보이지 않는 곳 때문에 길을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감을 느껴야 했죠.


사실 사진을 너무 못 찍습니다.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장관이였는데...
제주도 동부의 아름다운 오름들과 어우러져 평생 잊을 수 없는 장관을 볼 수 있습니다.
거기다 백록담에 혼자 앉아서 일출을 보다니... 또다른 세상 어딘가에서 홀로 있는 느낌이랄까요.


눈이 쌓여 있을 때는 정상에 오르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사진으로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오른쪽으로 미끄러지기라도 한다면 수백미터를 끝없이 굴러야 할 정도입니다. 더구나 아이젠을 물론 등산화도 없이 운동화를 신고 올라온지라 미끄럽기가 장난이 아니였죠.

한 밤중에는 눈이 얼어 있어서 그나마 나았지만, 날이 밝아 눈이 녹기시작하니 정말 미끄럽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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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까시 2009.05.15 22:35 신고

    와아~ 한라산이 굉장히 멋지군요+ㅂ+

    • k2man 2009.05.17 17:45 신고

      당시에는 많이 미쳤었나 봅니다. ㅋㅋ
      다음에는 겨울 한라산 사진을 좀 올려 보겠습니다. ^^;;
      방문 감사합니다.

방선문은 신선계와 인간세상을 잇는 문이라고 합니다.

이 문을 지나면 신선의 세계(영주산)로 들어 간다고 합니다.

제주목사였던 김영수의 친필인 환선대라는 글씨가 있답니다. 신선을 찾아 문에 들어섰는데 신선을 만나지 못하자 누대에서 신선을 불러본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유배를 왔다가 유한라산기를 남긴 최익현, 김영수, 영조때의 목사 홍중징, 이명준, 이괴, 김몽규, 고경준, 이원조, 이기온, 김옥균을 암살한 홍종우, 홍규 등등

가장 오래된 마애명은 광해군 1년인 1609년 김치 판관의 것이고 대부분은 18,19세기의 것이라고 합니다.

이 글을 쓰려고 제주역사기행이란 책을 다시 펼쳐 보았습니다.

제머리에는 저런 정보를 오래 기억하기가 어렵습니다. ㅋㅋ


 

방선문은 부임한 제주목사 같은 지방 고위 관료나 유배된 유명 인사들 등이 배를 띄워놓고 풍류를 즐겼다고 합니다.

영주산을 오를때도 이 곳을 거쳐가야 했고

신선의 세계(영주산)로 가는 문이기도 합니다.

이 곳에는 바위 곳곳에 선현들이 바위에 새겨놓은 글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좋아 보인다고 마구잡이로 찍기에는 그랬습니다.

예전 제주사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우리에게 그다지 좋게 기억되지 않는 이름들을 이 곳에서 꽤 많이 확인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사진을 찍어 놓고 제주민에게 폐를 끼친 목사의 글이라면 참 민망해 질것 같아서 다음에 찍기로 했습니다.

다음에는 공부를 더 열심히 하고 가보려고 합니다.

 

 

제주역사기행을 읽을 때 나왔던 대목을 드디어 하나 찾았습니다.

가운데 정말 누가 보아도 뛰어난 필체로 보이는 글이 있습니다.

제주목사였던 홍중징이 쓴 글인데 이 글 중 앞 3글자가 방선문의 다른 이름이기도 한 등영구입니다. 이 지역 지명이 들렁귀인데 비슷한 소리가 나는 등영구를 쓴 것 같다고 합니다. 뜻으로 하면 영주의 언덕으로 오르는 길이랍니다.

솔직히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문제의 글이 있습니다.

홍중징보다 50년 후인 정조때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명준 목사의 이름이 바로 오른쪽에 있습니다.

글씨체가 다른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습니다.

제가 보아도 정말 좋은 작품 같아 보이는데..

양옆에 마치 방해를 하듯 씌여 있는 글들이 미워보입니다.

이런게 방선문을 찾을 때의 재미인가 봅니다.

아 천장에 누가 적었는지 모르는 방선문이라는 글씨가 있다던데 다음에는 반드시 찾아 내겠습니다. ^^

한자라 참 어렵습니다. 한자공부하고 찾아야 할까 고민입니다.

제가 찾은게 잘못되었으면 지적바랍니다.

 

 

여름에 저 바위사이로 물이 흐르면 정말 감동일 것 같습니다.

봄에는 철쭉, 여름에는 바위사이로 흐르는 계곡물, 겨울에는 눈 쌓인 계곡.. 계절마다 아름다움이 있을 것만 같은...

올해에는 자주 찾고 싶어 집니다.

 

방선문은 잘 알려지지 않은 절경중에 하나입니다.

어느 제주도 홍보 책자를 보더라도 영주십경중 영구춘화라는 설명이 붙은 사진에는 한라산 능선을 따라 피어있는 철쭉꽃이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본래 영구춘화의 배경은 이 곳 방선문입니다.

옛날(호랑이가 담배 폈을지도 모를)에는 계곡의 바위 사이사이로 피어있는 철쭉이 너무나 아름다워 이곳에서 풍류를 즐기고 영구춘화라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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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는 수많은 용출수가 있습니다. 화산섬이 특성상 제주도는 비가 많이 와도 물이 흐르지 않고 지하로 스며들어 버립니다. 한라산에서 스며든 물은 해안에서 다시 솟아 나게 되는데, 이 것이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지장샘과 같은 용출수입니다.
제주도의 마을들이 해안을 따라 자리잡게 된 이유가 바다에 가깝다는 이유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물을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장샘은 서귀포 서홍동에 위치해 있습니다. 본디 서홍동은 동홍동과 하나의 부락이였습니다. 이 둘을 합쳐 예전에는 홍리라고 했었습니다. 그 규모가 커지면서 서홍동과 동홍동으로 나뉘게 되었죠.

그런데 수많은 샘들 중에서 이 지장샘이 유명해진 이유가 있습니다. 유명한 전설이 내려오고 있기 때문인데요.. 그 전설을 한 번 들어 보시죠.


사진의 표석(?)에 있는 전설을 그대로 옮겨 보았습니다.
고려 예종때(서기 1110년경) 송나라에서는 탐라에 인재가 태어난다는 풍문이 떠돌아 송나라 조정에서는 압승지술에 능한 호종인에게 탐라에 가서 십삼혈을 모두 막으라고 명하였다. 호종단이 처음 지금의 남원읍 위미리를 경유하여 홍로에 있는 샘을 찾아 나섰다.
호종단이 홍로에 닿기전 어느날 한 농부가 밭을 갈고 있는데 백발노인이 나타나 점심그릇인 행기에 물을 가득히 담아 소 짐바구니에 속에 감추면서 만일 누가 와서 이 물을 찾더라도 모른다고 해주시오 하고 사라져 버렸다. 이윽고 호종단이 나타나 농부에게 물었으나 농부는 모른다고 했다.
호종단은 근처를 헤매면서 물을 찾았으나 찾을 수가 없으므로 탄식하며 자기의 술서를 찢어 버리고 돌아가 버리자 농부는 백발노인이 시킨대로 감춰두었던 물을 갖다 부으니 거기서 맑은 물이 흘러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이 물은 지혜롭게 감추어졌다고 하여 지장샘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초등학교 시절이니 20년이 되었네요. 그 시절에 친구들과 찾아온 이후로 처음으로 이 곳을 찾아 봤습니다.

위치는
경도  126 : 33 : 38
위도  33 : 15 : 54

물이 샘속는 곳입니다. 아주 풍부한 수량을 갖고 있는 곳은 아닙니다. (예래 논짓물 같은 곳을 보면 논농사를 지을 수 있을 만큼의 풍부한 수량을 갖고 있는 곳도 있습니다.)

어렷을 때 기억과 별반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지하수 개발이 많아져서 이런 샘들이 말라가도 있다던데, 이 곳은 어떤지 궁금하기는 합니다.


제주의 용천수에는 이렇게 여러 단계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 단계로 물을 흘려 보냄으로써 적은 물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물이 솟는 가장 윗 부분은 먹을 물을 뜨는 곳이고, 아래쪽에서는 빨래 등을 합니다. 물론 지금은 이용하지 않지만요.


지장샘에는 송사리 네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 곳에서 살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황폐해 졌는지 두 마리는 죽기 직전의 상태더군요.

샘에는 깨진 유리병과 쓰레기가 널려 있어서 이 때문인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지울 수 없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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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이번 망언으로 제주도민으로써 말로 할 수 없는 분노를 느낍니다.

전에는 우리나라의 한 국회의원이 제주도 독립이 어쩌고 말을 했다가 제주도민에게 엄청난 질타를 받았었습니다. 제주도가 왜 그리 민감한지, 제주도의 근현대사를 들여다 보지 못하는 것은 일본이나 국내 정치인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4.3사건 등으로 큰 난리를 겪었던 제주는 정치적인 사건에 휘말리기 싫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주도에서 당선되려면 무조건 "무소속"으로 나와야 한다는 말이 있었고, 최근에는 조금 다르지만 한때는 실제로 그랬었으니까요.)

근현대사에 있어서 제주도의 희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일제와 한국전쟁으로 인한 학살과 피해를 겪지 않은 지역이 없겠지만, 제주도의 상처는 아직도 치유될 날이 멀어 보입니다.

제주도의 근현대사 아픔을 가장 많이 간직하고 있는 제주도 대정으로 가보겠습니다.

일제강점기 말기 태평양전쟁에서 패배를 거듭하던 일제는 오키나와가 점령당하자 제주도를 최후의 보루로 삼기 시작합니다.

1945년 태평양전쟁이 말기로 치달으면서 결7호 작전(제주도 방어 작전)을 세우고 관동군 2개 사단과 일본 본토 부대까지 7만 5천이 넘는 병력을 제주도에 집결시킵니다.

1. 송악산 해안진지동굴

대장금의 마지막 이 장면을 기억하고 계시는지요?

이 장면의 장소가 다름 아닌 송악산 해안 땅굴입니다. 가미카제 작전이 비행기를 이용한 작전만 실행에 옮겨 졌지만, 실제로는 자폭 고속잠수정 작전까지 존재합니다. 해안으로 오는 적 상륙함대를 맞서기 위한 자폭 잠수정을 숨겨두기 위해 만들어진 해안 땅굴이 바로 이 곳입니다.

 

2. 비행기 벙커

이 대정지역에는 이뿐만 아니라 근현대사의 아픔을 그대로 유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이 무엇으로 보이시나요? 바로 이 지역에는 알뜨르 비행장이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비행장으로 당시 제주비행장이던 제주공항과 함께 중요한 군사요충지였습니다.

아래 사진은 비행장에 보관되는 항공기의 벙커입니다. 지금도 이 지역에 가면 수 십개의 벙커가 있습니다. 직접 가보니 콘크리트 두께가 1m가 넘을 정도로 단단하게 만들어 졌으며, 과거에 이 벙커들을 철거하려고 폭약을 터트려도 도저히 부서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다음의 스카이뷰로 본 사진입니다. 빨간색 원 부분이 바로 저런 벙커가 남아 있는 곳입니다. 실제 그 지역을 가보면 도저히 믿기지 않을 풍경이 펼쳐집니다.

 

3. 알뜨르 비행장

이 뿐만 아닙니다. 당시 알뜨르 비행장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당시 일제에 강제로 빼앗겼던 비행장부지는 아직도 지역주민에게 돌려지지 않고 공군에서 점유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원래 비행장은 아래 사진보다 훨씬 넓지만 우습게도 공군에서 지역주민에서 밭으로 일부를 임대해 주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있는 부분은 유사시를 대비해서 항상 이런 상태를 유지한다고 합니다.

지역주민 소유였던 땅이 일제강점기에 빼앗긴 이후로 아직까지도 반환되지 않고 국가에서 소유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오히려 지역주민에게 임대를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4. 백조일손지묘

이 지역의 아픔은 또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일명 '백조일손지묘'라고 불리우는 곳입니다. '백 할아버지의 한 자손' 이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4.3사건과 6.25를 거치며 누명을 안고 학살된 분들을 모신 곳입니다. 이 당시 학살터는 제주도에 부지기수로 널려 있습니다. 당시 학살된 사람만 적게는 2만, 많게는 8만까지 보고 있습니다. 마을 전체가 불타버려 증언해 줄 사람조차 없으니 말입니다. 신고된 사람만 2만 가까이 됩니다.

최근 4.3사건에 대해서 노무현대통령이 사과하고 새롭게 인식하고 있는 와중에, 이에 대해서 우익단체에서 헌법소원까지 냈더군요.

이 곳이 그 분들이 돌아가신 곳입니다. 둘레가 500m는 될만하고 깊이가 20m는 됨직한 큰 구덩이 입니다. 이 구덩이에서 수 백명이 학살되었고, 후에 이 시신들을 수습하고자 했으나 시신이 모두 엉켜있어 신원을 구분해 수습하기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충 유골을 사람 수만큼 수습하여 위에 나온 사진처럼 한 곳에 모셨습니다. '백조일손지묘'라는 이름도 이런 이유로 만들어졌습니다. 시신들이 모두 엉켜 있었어서 유족들 모두가 한 자손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5. 육군 제2훈련소 터

마지막 사진은 6.25전쟁 당시의 육군 제2훈련소 정문입니다. 6.25가 발발하자 전쟁에 나갈 젊은 남자들을 끌어 모으지만 훈련시킬 적당한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주도에 육군 훈련소가 생기게 됩니다.

6.25당시 이 대정지역이 제2훈련소였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대정 입구 대도로변에 덩그러니 두 개의 콘크리트 기둥만이 남아 있습니다.

제1훈련소도 인접한 중문 근처 지역에 있었다고 합니다. 6.25 전쟁이 끝나면서 제1훈련소는 폐쇄되고 대정에 있던 제2훈련소는 논산으로 옮겨가게 됩니다.

논산의 제2훈련소가 숫자 2를 빼고 육군훈련소란 이름으로 바꾼지도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현장 사진이 많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항공사진으로 대체를 해서 많이 아쉽습니다.

다음 번에는 좀 더 많은 현장 사진을 준비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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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추억이 담겨 있는 사진들을 기억속에서 꺼내어 봅니다.

가끔은 지난 사진들을 보며

혼자만의 기억에 빠져 있는 것이 큰 행복일 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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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대학교의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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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대학교 진입로의 벚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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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정상의 까마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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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의 철새도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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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봄... 유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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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래리 가는 길.... 초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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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에서의 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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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에 방선문을 찾았습니다.

눈도 오고 혹시나 눈덮힌 계곡을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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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선문은 신선계와 인간세상을 잇는 문이라고 합니다.

이 문을 지나면 신선의 세계(영주산)로 들어 간다고 합니다.

제주목사였던 김영수의 친필인 환선대라는 글씨가 있답니다. 신선을 찾아 문에 들어섰는데 신선을 만나지 못하자 누대에서 신선을 불러본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유배를 왔다가 유한라산기를 남긴 최익현, 김영수, 영조때의 목사 홍중징, 이명준, 이괴, 김몽규, 고경준, 이원조, 이기온, 김옥균을 암살한 홍종우, 홍규 등등

가장 오래된 마애명은 광해군 1년인 1609년 김치 판관의 것이고 대부분은 18,19세기의 것이라고 합니다.

이 글을 쓰려고 제주역사기행이란 책을 다시 펼쳐 보았습니다.

제머리에는 저런 정보를 오래 기억하기가 어렵습니다. ㅋㅋ

 

방선문은 부임한 제주목사 같은 지방 고위 관료나 유배된 유명 인사들 등이 배를 띄워놓고 풍류를 즐겼다고 합니다.

영주산을 오를때도 이 곳을 거쳐가야 했고

신선의 세계(영주산)로 가는 문이기도 합니다.

이 곳에는 바위 곳곳에 선현들이 바위에 새겨놓은 글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좋아 보인다고 마구잡이로 찍기에는 그랬습니다.

예전 제주사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우리에게 그다지 좋게 기억되지 않는 이름들을 이 곳에서 꽤 많이 확인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사진을 찍어 놓고 제주민에게 폐를 끼친 목사의 글이라면 참 민망해 질것 같아서 다음에 찍기로 했습니다.

다음에는 공부를 더 열심히 하고 가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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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역사기행을 읽을 때 나왔던 대목을 드디어 하나 찾았습니다.

가운데 정말 누가 보아도 뛰어난 필체로 보이는 글이 있습니다.

제주목사였던 홍중징이 쓴 글인데 이 글 중 앞 3글자가 방선문의 다른 이름이기도 한 등영구입니다. 이 지역 지명이 들렁귀인데 비슷한 소리가 나는 등영구를 쓴 것 같다고 합니다. 뜻으로 하면 영주의 언덕으로 오르는 길이랍니다.

솔직히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문제의 글이 있습니다.

홍중징보다 50년 후인 정조때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명준 목사의 이름이 바로 오른쪽에 있습니다.

글씨체가 다른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습니다.

제가 보아도 정말 좋은 작품 같아 보이는데..

양옆에 마치 방해를 하듯 씌여 있는 글들이 미워보입니다.

이런게 방선문을 찾을 때의 재미인가 봅니다.

아 천장에 누가 적었는지 모르는 방선문이라는 글씨가 있다던데 다음에는 반드시 찾아 내겠습니다. ^^

한자라 참 어렵습니다. 한자공부하고 찾아야 할까 고민입니다.

제가 찾은게 잘못되었으면 지적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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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저 바위사이로 물이 흐르면 정말 감동일 것 같습니다.

봄에는 철쭉, 여름에는 바위사이로 흐르는 계곡물, 겨울에는 눈 쌓인 계곡.. 계절마다 아름다움이 있을 것만 같은...

올해에는 자주 찾고 싶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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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부터 생각보다 많은 눈이 왔습니다.

올 겨울이 가기전에 눈 쌓인 방선문을 가보고 싶었습니다.

지난 폭설에 미처 생각치 못하다가 1월에 갔었습니다.

기다리던 눈이 왔는데 따뜻한 햇살에 눈이 대부분 녹아 버렸습니다.

누가 이 돌을 올려 놓았을 까요

200년전 조선시대 유생들이 올려 놓은 것은 아닐까 하는 이상한 상상을 해봅니다.

참 귀엽지 않나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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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 눈이 녹았지만

하얀 눈속의 푸르름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방선문은 잘 알려지지 않은 절경중에 하나입니다.

어느 제주도 홍보 책자를 보더라도 영주십경중 영구춘화라는 설명이 붙은 사진에는 한라산 능선을 따라 피어있는 철쭉꽃이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본래 영구춘화의 배경은 이 곳 방선문입니다.

옛날(호랑이가 담배 폈을지도 모를)에는 계곡의 바위 사이사이로 피어있는 철쭉이 너무나 아름다워 이곳에서 풍류를 즐기고 영구춘화라 했다고 합니다.

그 때문인지 계곡으로 내려가는 중간에 이렇게 철쭉을 심어 놓았습니다.

중간 중간 볕이 잘들기 위해서인지 밑둥으로 잘려나간 나무가 있어 오히려 허전함이 느껴집니다.

봄에 가보지 못해 바위 사이로 철쭉이 피어날지 모르겠지만

올 봄에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꼭 다시 찾으려 합니다.

아~~ 매년 봄에 이곳에서 방선문계곡 음악회를 한다고 합니다.

이때도 꼭 찾을 예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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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초에 방선문을 다녀오고 다시 다녀왔다.

제주대학교에 철쭉이 만발했길래 방선문에도 철쭉이 피었을거라고 생각하고 갔지만 아직 철쭉은 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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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가봤을 때는 철쭉 몇 그루가 심어져 있었는데... 이번에 가봤을 때는 마을에서 방선문을 관광지로 만들려고 노력중인지 더 촘촘히 심어 놨다.

진입로도 정비를 하는지 곳곳이 공사중이였다.

내 자동차 바퀴에 제발 못이 안 박혔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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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이 방선문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물으시는 분이 있으셔서 사진을 올려 본다.

주차장에서 바로 내리면 간이화장실과 표석이 보이고, 그 사이로 이 길이 나 있다.

오늘은 철쭉이 피였나 확인하고픈 마음에 갔었다.

아쉽게도 지난번에 그다지 새로운 느낌이 없었다.

더구나 계곡에서 큰 목소리들이 들려서 분위기가 어수선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계곡으로 내려가지는 않았다.

방선문 방문은 다음으로 미루고.... 오랫만에 화북포구를 가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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